운세 점성술 12하우스

12하우스

1하우스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서 세상에 처음 태어난 후 무제한적이고 우주적인 삶의 자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11하우스에서 보았듯이 자신과 타인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한 시스템의 각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 관계하고 상호 연결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신비가들과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정한 우리는 타인들에 의해 영향 받으며 타인들 또한 진정한 우리에 의해 영향 받는다. 우리의 지성은 타인들과 연결되고 서로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은 자아에 대한 더욱 집단적이고 폭넓은 개념에 의해 급속하게 설자리를 잃고 있다.

12번째 하우스에서 개인은 개인에고의 해제와 자아보다 더 큰 무엇인가와의 합일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11번째 하우스에서처럼 지성과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가슴과 영혼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트리스토퍼 플라이는 다음가 같이 말했다.

인간의 가슴은 신의 크기만큼 뻗어나갈 수 있다.”

시인인 월터 드 라 마레는 우리의 꿈은 희미한 에덴동산에서 전해진 이야기들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근원적인 단계에서 물의 사인인 물고기자리와 해왕성과 연결되는 12하우스는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해체에 대한 욕구를 나타낸다. 그 욕구는 자궁 속의 차별 없는 물로의 귀환과 순수한 하나 된 상태로 회귀하고 싶은 갈망을 뜻한다.

프로이드, , 피아제, 클라인 등의 현대 심리학의 주류학자들은 유아의 첫 의식구조는 중립적이며 경계, 시간,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초기의 기억들은 대부분 지워져 버린다. 깊은 단계에서 개인은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이 어떤 한계 없이 무제한적이고 영원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러한 합일에의 재발견은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다. 환원주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순수한 일체에 대한 잃어버린 개념과 재연결 하려는 욕구는 탄생 이전 상태로의 퇴행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이 동일한 욕구는 근원과의 합체라는 신비주의적 갈망과 자신보다 더 위대한 뭔가의 일부가 되는 직접적 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신성한 향수병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 상태로의 회귀에 대한 전망은 행복해 보이고 황홀하며 평온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우리 안의 또 다른 뭔가는 이러한 갈망에 저항한다. 우리의 자아는 자아의 소멸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려 한다. 자아는 삶의 한 조각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아는 왜 이러한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가? 물고기자리의 상징기호를 보면 두 마리의 물고기가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인간은 두 가지 대조적인 인력에 의해 근본적인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개인은 고독감에서 해방되길 원하고 개인적 분리감을 초월하고 싶어 한다. 한편 개인은 경계선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독립된 자아의 상실을 불안해한다. 합일을 원하면서 한편 합일에 저항하고 두려워하는 이러한 존재에 관한 이중적 결합은 12하우스의 주요한 약점이다. 왜냐하면 자아 정체성의 해체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아초월을 향한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체할 뭔가를 찾게 된다. 일체와의 재연결을 위한 한 가지 전략은 섹스와 사랑을 통한 것이다. ‘내가 만약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나는 그러한 분리감을 극복하게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한한 힘과 무한한 편재함이라는 잃어버린 개념을 다시 얻기 위한 또 다른 전략은 힘과 명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나의 영향력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삶의 모든 것이 나와 연결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살충동과 여러 형태의 자기 파괴적 행동은 분리감 없는 존재로서 지복의 상태로의 회귀욕구를 대체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 기도, 신에 대한 헌신 같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초월을 추구한다.

12하우스는 이러한 이슈들 중 어떤 것들을 유발할 수 있다. 12하우스는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삼켜버리고 흡수하거나 팽창시킬 수 있다. ‘나는 여기고 당신은 거기라는 패러다임의 포기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12하우스가 강조된 것은 명확한 정체성 확립이 어려운 사람임을 알려준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 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타인은 12하우스가 강조된 사람들의 정체성을 극적으로 왜곡시킨다.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뭔가와 합쳐지도록 자아를 희생하는 대신 신성한 특질들이 자아에 젖어들도록 시도할 수도 있다. 신과의 재연결을 추구하는 대신, 아브라함 말로가 고차원적 탈선이라 부른 것처럼 부풀려진 형태로 신의 역할을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에 관한 12하우스의 혼란은 결국 삶의 명확한 방향성의 부족을 초래하게 된다. 어떤 단계에서, 모든 것은 같은 거야. 무엇이 다르지?

명료한 정체성이 구별되거나 하나의 구조가 삶에 세워지자마자 발에 깔려있는 양탄자가 당겨지는 일이 생기고 애매모호함이 다시 장악해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은 나라는 개념과 관련된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하자마자, 그것은 불가사의하게 빠져나가버리고 사라져 버린다. 모든 것을 함께 거머쥘 수 있는 능력과 나아가 개인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약간의 통제력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버리는 해체력에 종속되어 버린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의 모호함은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고 타인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반면에 그 모호함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

12하우스가 강조된 어떤 사람들은 주위의 고통들에 너무 압도되어서 세속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외부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일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깊이로, 12하우스는 원조자, 해결사, 구조자, 순교자, 타인들의 필요와 소망에 책임을 느끼는 구원자를 나타낸다. 희생의 원래 의미는 신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신과 고차원적 힘에 제공됨으로써 더욱 신성해 질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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